▲ 삽화=화가 박종민

고요가 빛으로 화한다. 도시의 밤이 어쩌면 이토록 조용할 수가 있을까. 언제 보아도 달빛은 아름답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방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거나 양탄자 위에서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달빛의 그림자를 본다.

지난봄에 마련해 둔 매화꽃을 뜨거운 찻잔에 띄워본다. 연두빛이다. 매화향이다. 달빛에 백자 찻잔의 매화차 한잔, 참으로 얼마 만에 느껴보는 고요인가. 이 얼마나 홀가분한 사색인가.

도시의 밤은 잠들어 있다. 들뜬 세상의 기별도 닿지 않은 채 초열흘 달빛은 처연하다. 달빛을 따라서 대문 밖을 나선다. 지나가는 바람도 무어라고 한줄 시를 떨구고 갈 것만 같다. 나의 귀는 오늘따라 바람의 시를 알아듣는다.

초겨울 바람에 두 볼이 차갑다. 지난가을은 많은 사람들에겐 풍성했겠지만, 나는 마음이 외로움으로 가득찬다. 마른 나뭇가지는 겨울을 껴입고 달빛에 떨고 있다.

여름에 그토록 푸르른 나무가 떠나는 계절 앞에 무릎을 꿇는다. 겨울바람이 짓궂게 불어도 새파란 순들이 파랗게 돋는 삼월은 오겠지.

차빛과 달빛 가운데서 불현듯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얼굴을 떠올린다. 내 마음 가운데 17세기를 살다간 화가 렘브란트가 있다는 것이 오늘밤 나를 외로움으로부터 구원한다.

그의 그림에 그려진 빛과 어둠의 미묘한 회화적 효과를 오늘은 그의 안내를 받으며 달빛 속을 걷는다. 화가와 같이 달빛을 걷는다. 내면에 숨겨진 보다 심오한 영혼의 세계로 그는 나를 인도해간다.

그의 그림속의 미묘한 빛은 강열하고 찬란한 햇빛은 아니다. 오늘밤 싸늘한 겨울, 초열흘 달빛이다. 은근한 달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사로잡는 마력 같은 것이다.



그의 회화에서 내면적인 것, 절실한 인간성의 깊이에 한동안 빠져있었던 적이 있다.

렘브란트는 대상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는 사실적인 표현을 썼지만, 색채나 명암의 대조를 강조해서 의도하는 회화적 효과를 올리기를 했다.

명암의 대조는 렘브란트 작품의 특색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를 가리켜 ‘빛과 어둠의 화가’라고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17세기 유럽 회화사상 최대의 화가이다.

렘브란트는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네델란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생활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화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큰 명성과 인기와 부를 누렸다.

이 해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가 죽음으로써 인기와 아내를 동시에 잃은 그의 생활은 차차 고통스럽게 되었으나, 정작 그의 위대한 예술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사스키아와의 사이에 난 아들 티투스의 성장과, 1645년경에 맞은 마음씨 착한 둘째 부인 헨드리키에의 내조는 그의 예술을 더욱 원숙하게 하여, 오늘날 대표작이라고 하는 대부분은 1640년대 이후에 만들어졌다.

화려한 붓놀림 풍부한 색채,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과 어두움, 렘브란트 그림의 마력은 명성을 누리던 젊은 시절보다 고독과 파산의 연속이었던 말년에 더욱 빛났다.

▲ 한분옥 수필가 울산예총 회장

렘브란트는 화폭에 깊은 빛과 그늘을 창조한다. 그 신비의 예술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애 넘치는 따뜻한 애정으로 다가와 오늘 밤 나를 이끈다. 회화는 우정과 같아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오늘 그와 함께 달빛 산책을 나누고 있다.오늘 그와 함께 걷는 초겨울 달빛은 차갑고 신비하다.그와 함께 하는 겨울

달빛은 생명이다. 살아있음의 축복이다.

한분옥 수필가 울산예총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