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화가 박종민

늦은 가을밤 내리는 밤비에 마음이 젖는다. 한 동안 몹시 쓸쓸하다가도 다시 차분해지는 밤비 내리는 저녁 속속들이 젖어도 보고 싶다.

밤비가 내릴 때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읽노라면 몸과 마음은 더없이 편안하다. 밤비가 내릴 때 친구를 생각하면 못 견디게 그립다. 그 자리에서 편지를 쓴다. 밤비가 내릴 때 글을 쓰노라면 문장에도 각별히 함축성을 담는다.

인생의 여정에서 밤비에 대한 시적 정취는 물론, 밤비의 매력에 깊이 빠지는 이가 나뿐이 아닐 것이다. 밤비는 한 차례 또 한 차례 돌발적인 야심에 빗방울을 뿌려 그것이 꺼지게 할 것이고, 미칠 듯한 흉금을 평온해지게 할 것이다.

밤비 내리는 밤 좋은 작가를 골라 그의 저서를 읽는다면 더없이 좋은 밤이 될 것이다. 고색창연한 문화를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며, 어떤 사물에 비판과 애착, 혼란과 분석, 상상과 허구성을 얘기할 수도, 상업적인 것과 엄숙한 얘기도 동시에 할 수 있을 것이다. 재스민 향기같이, 때로는 향기 그윽한 중국술 같이 독자를 매료시킨다면 함께 나란히 앉지 않았지만 한밤을, 더구나 비오는 밤을 함께 꼬박 세우는 관계가 될 것이다.

새벽이슬처럼 영롱한 산문으로 장강대하처럼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작가 위츄위(余秋雨)는 여러 날 밤, 더구나 밤비내리는 날이면 자주 나와 함께이다. 독서로 그의 담화를 들으면 곧 그의 철학은 나의 사상적 문화적 좌표가 된다. 그런 날이면 그와 나만의 시간을 남편도 간섭하지 못하여 혼자 잠들게 된다.

밤비 속에는 많은 사상과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이런 밤이면 과학자들도 미적인 관조를 즐긴다. 관조에 만족감을 찾으며 그들의 연구를 ‘미의 탐구’라고 묘사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이나 뉴턴의 광학과 같은 걸작에도 그 논리의 우아함이 있다. 이것 역시 비오는 밤의 미적 관조에서 비롯함이라 할 수도 있다.

유명한 예술가들은 미적인 고려는 물론 규율과 방법까지도 중요하게 여긴다.

수필가 위츄위가 작품에 몰두할 때의 모습은, 차라리 작품의 가설을 세우는 데 깊이 빠진 과학자들의 정신적인 고통과 비슷하다고 한다. 형식을 엄격히 따진다는 뜻이다. 풍부한 문화적 내실, 육중한 역사적 감각, 이성이 반짝이는 철리(哲理)가 글 속에 녹아 있다.

1968년 상하이 희극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세계희극이론사 및 중국문화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수필가 중 한 사람으로, 대학에서 예술이론 및 중국문화사를 연구·강의한다.

그는 글 속에서 중국 역사 5000년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 5000년까지 꿰뚫고 있다. 어떤 면에서 중국 문화를 다룬 것이 아니라 심오한 동양 정신을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산문에서 수필 문학은 중국과 대만, 홍콩에서 판을 거듭하며 최고 베스트셀러로 1200만부가 쉽게 팔려나가 출판계의 신화를 창조하기도 했다.

▲ 한분옥 수필가 울산예총 회장

문장이 너무나 독특하고, 서정적이며, 시정이 가득하여 수십 번을 읽어도 감동이 그치지 않는 신비로운 글이다. 순수한 문학도들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최대의 우상이며 거룩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13억 인구가 어우러져 빚어낸 다채로운 문화현상을 바탕으로 수필의 기백과 경지를 보여준다. 앞으로 5000년 산문 문학이 가야 할 방향마저도 열어준다.

유명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1500번 이상 연습을 하면서 비결은 재능이 아니라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라고 했다. 탁구 선수가 새로운 기법 하나를 익혀 사용하는 데는 적어도 7000번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분옥 수필가 울산예총 회장